기술의 가치는 기술 밖에서 결정된다
기술은 그 자체로 가능성일 뿐이다. 누군가 실제로 사용해야 비로소 가치가 된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좋은 것과 사람이 쓰기 좋은 것은 다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연구자는 주로 새롭고 어려운 문제를 본다. 반면 사용자는 자신의 문제가 얼마나 쉽고 확실하게 해결되는지만 본다.
그래서 연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와 사람들이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사이에는 자주 간극이 생긴다. 박사들끼리만 이야기할수록 그 간극을 발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사람이 돈을 지불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유용하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돈을 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결국 좋은 기술을 만드는 것과 중요한 기술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기술이 사람의 선택을 바꾸지 못한다면, 기술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그 영향은 제한적이다.
연구는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묻는다. 인간은 그것을 왜 써야 하는지 묻는다. 사업은 그것에 왜 돈을 내야 하는지 묻는다.
여기서 스타트업이라는 흥미로운 구조가 등장한다. 스타트업이 푸는 문제가 반드시 거대한 현재 수요를 가진 것은 아니다. 수익이 전혀 없어도 막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은 존재한다.
투자자는 현재의 기술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기술이 미래에 만들어낼 수익의 가능성을 산다. 스타트업은 제품과 함께 미래에 대한 권리를 판다.
그 미래에는 아직 실체가 없다. 수요가 생길지, 다른 시장으로 전환해 살아남을지,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할지 알 수 없다. 실체가 없기에 기대는 현재의 근거보다 훨씬 크게 확장될 수 있다.
투자자는 이 불확실성을 포트폴리오로 감당한다. 대부분이 실패하더라도 하나의 성공이 모든 손실을 메우고도 남는다면, 당장의 수요와 매출이 없어도 투자할 이유가 생긴다.
이 역시 수요다. 사용자는 기술이 주는 효용을 사고, 투자자는 기술이 만들어낼 수익의 가능성을 산다. 서로 다른 것을 사지만, 둘 다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기술의 가치는 단순히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어떤 미래를 믿게 하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자본을 움직이는지가 함께 가치를 만든다.
그러나 기대가 영원히 수요를 대신할 수는 없다. 금융은 미래의 가치를 현재로 끌어올 수 있지만, 그 미래가 끝내 현실의 수요로 바뀌지 않으면 가치는 사라진다.
그래서 기술은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꿈을 팔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남으려면 그 꿈은 결국 현실의 수요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