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나를 걸 것인가
구글에 와서 혼자 지내다 보니 퇴근 후 생각이 길어지곤 한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도 조금씩 선명해졌다.
내가 선택한 문제에,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몰입해, 충분히 큰 결과를 만드는 삶.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공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단순히 큰 결과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나를 사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편안하게 쉬기 위해 자유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게 중요한 문제를 선택하고, 그 문제에 깊이 몰입하기 위해 자유를 원한다.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나를 걸 것인지 직접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 내 생각을 현실로 만들고 싶고, 내 능력이 어디까지 닿는지도 확인하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은 채 삶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
삶은 유한하다. 결국 대부분은 사라지고, 무엇을 이루더라도 영원히 남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어차피 한 번뿐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편이 낫다.
그래서 결과도 중요하다. 가능성은 가능성만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생각은 현실과 부딪혀야 하고, 능력은 실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충분히 큰 결과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단순히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믿었던 것이 현실에서도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경쟁에 참여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타인이 정한 기준에서 조금 더 앞서기 위해 삶을 소모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목표를 잘 달성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나에게 온전한 성공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어려움이나 책임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납득할 수 있는 목적이라면 오랜 시간 자신을 묶을 수 있고, 어려운 책임도 감당할 수 있다. 제약이 없는 삶이 아니라, 받아들일 제약을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원한다.
자율성은 하고 싶은 일을 그때그때 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을 피하거나 현실의 평가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게임을 선택했다면 그 결과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자율성은 점수를 거부할 권리가 아니라, 어떤 게임에서 점수를 받을지 선택할 권리에 가깝다.
돈과 실력, 성취와 평판을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단순히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생계 때문에 판단을 왜곡하지 않고, 조직의 필요에 내 방향을 전부 맡기지 않으며, 중요하다고 믿는 일에 시간과 자원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나는 성공 자체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그 힘을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